신라 신무왕의 셋째아들 흥광(興光)을 시조로 하는 광산김씨(光山金氏)는 한국의 대표적인 가문의 하나로서 '광김'으로 일컫는다. 이 가문은 조선시대에 총 265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여, 본관별 서열로 제5위가 되었다. 여기에서 정승이 5명, 대제학이 7명, 청백리가 4명, 왕비가 1명이 나왔는데, 특히 대제학 7명은 ‘광김’을 더욱 빛나게 한 사계(沙溪) 장생(長生)의 자손이다.
광산김씨는 고려 초기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른 3세손 길(佶)로부터 8대에 걸쳐 평장사(平章事)를 배출하여 명문 가문의 기반을 이루었으며, 15세손으로 역시 삼중대광에 오른 정(鼎)의 아들인 약채(若采)·약항(若恒)·약시(若時) 3형제대에서 더욱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광김'의 첫 정승(좌의정)을 지낸 국광(國光)과 영의정을 지낸 극성(克成)은 이들의 후손이며, 장생은 국광의 5대손이다. 그는 예학(禮學)의 태두로서 그의 학문은 이조판서를 지낸 아들 집(集)에게 계승되어 부자가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되는 전무후무한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집의 아우 반(槃)의 여섯 아들은 모두 출중하고, 후손이 크게 번창하여 ‘광김’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청구영언》을 낸 가인(歌人) 천택(天澤), 영의정 상복(相福), 우의정 희(喜), 이조판서 상휴(相休)·기만(箕晩)·기은(箕殷), 대제학 만기(萬基)·만중(萬重) 형제 등이 모두 이들의 후손이다. 이 가운데 총융사(摠戎使)를 지낸 만기와 《구운몽》 《사씨남정기》의 작가로 유명한 만중의 후손 중에서 많은 인물이 나와 ‘사계 자손’의 주축을 이루었다.
예조판서·대제학을 지낸 진규(鎭圭)는 만기의 아들이며, 대제학·영의정을 지낸 양택(陽澤)은 진규의 아들로서 3대 대제학, 형제 대제학의 진귀한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시문집 10권을 남긴 문인 춘택(春澤), 고종 때 이조판서·대제학을 지낸 영수(永壽)는 진규의 형이며, 판서·참찬을 지낸 진구(鎭龜)의 후손이다. 2000년 인구조사에서 25만 8936가구에 83만 700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10월 22일 월요일
광산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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